산길탐구
[토끼봉능선 중허리길] – 밀림 속 거대한 문명과도 같은 산길
1. 중허리길
산길이란 대개 마을에서 마을을 잇거나 또는 깊은 산중에 있는 암자에서 마을을 잇는 길이 대부분이다.
지리산중의 산길들은 이런 식으로 사람들이 오가면서 자연발생적으로 생기며 시행착오를 겪으며 발달한 문화재 같은 것이다.
산중마을은 대부분이 식수 확보가 유용한 계곡 주변이나 혹은 재를 넘어가는 산길 주변으로 발달하기 마련이다.
산중마을이 능선 중허리에 있다면 그 마을에서 대처 마을로 드나드는 길은 대부분 사면을 돌아 재를 넘어 건너 마을로 갔거나 혹은 계곡을 따라 이어진 길로 내려서 나갔을 것이다.
현재 지리산에 남아 있는 많은 길들이 그랬음을 보여주고 있다.
그런데, <다우>님께서 복구한 명선북능 중허리기에서 보듯이 능선이나 골로는 붙지 않고 내내 중허리만 뚫고 나가는 길은 자연 발생적으로 생긴 길이 아니라 어떤 목적을 가지고 계획적으로 만들어진 산길일 확률이 높다.
2. 토끼봉능선 중허리길 제보
작년에 [지리산 산길 지도] 제작을 위하여 트랙을 수집하는 과정에 <슬이>님으로부터 제보가 있었는데 토끼봉능선에서 어떻게 내려섰는데 험한 토끼봉 사면의 산 중간에 뜻밖에도 고속도로 같은 산길을 만났다는 것이다.
그 당시 그 길의 정체를 정확하게 알 수 없어 궁금한 마음으로 짧은 구간 트랙을 따온 것을 보내주었던 것이다.
이후 몇 차례의 시도 끝에 드디어 토끼봉능선 중허리길의 정체를 밝혔다.
이 길은 직경 20cm 정도의 굵은 PVC 배관이 함께 이어져 있는데 짐작하건데 칠불사에서 용수를 위하여 설치하였을 것이다.
그런데 특이한 것은 산중에 배관을 설치하려면 바위를 둘러가기도 하고 지하에 매설되는 구간도 있는데 항상 사람이 다닌 산길이 배관로와 별도로 정성스럽게 건설되어 있는 것이다.
사람이 가지 못할 구간에는 나무 사다리나 다리가 놓여있고 나무 사다리나 다리가 무너질 것을 대비하여 나무에 줄을 걸어 만약에 파손될 경우까지 고려를 해 놓았다.
그렇지 않으면 돌로 계단을 만들거나 디딤돌을 만들어 한구간 끊긴 곳 없이 사람이 다닐 수 있는 길을 만들어 놓았던 것이다.
명선북능 중허리길과 비교한다면, 명선봉북능 중허리길은 산막의 물품을 이동하기 위하여 비교적 완만한 지형을 따라 길을 넓직하게 잘 다듬어 놓아 산행하기가 아주 수월한데 비하여 토끼봉능선 중허리길은 거대한 암봉 지대에 매달린 배관을 놓칠세라 어려운 지형을 이리저리 피하면서도 어쩌든 사람이 다닐 수 있는 산길을 만들어 놓았던 것이다.
배수용 배관의 설치 특징이 구불어 지지 않고 일정한 기울기로 긴 구간에 걸쳐 설치가 되어야 하기 때문에 거대한 암봉이 나타나면 배관은 암봉 중허리를 휘감아 돌아 설치가 되었지만 산길은 암봉을 위로 혹은 아래로 우회할 수 밖에 없어 길을 놓치기 일쑤였다.
그래도 배관이 크게 벗어나지 않는 곳에 집중하여 찾아보면 디딤돌을 놓은 건설된 산길을 찾게 된다.
*배관과 별도로 항상 산길이 주변에 이어져 있어 배관이 사람이 접근 할 수 없는 구간으로 갈 경우 산길이 배관과 헤어져 다시 배관을 만날 때가지 이어져 있다.
*배관은 수평방향으로는 때로 휘기도 하지만 수직방향으로는 용수의 흐름을 위하여 일정한 기울기로 설치되어 있다.
*문명처럼 정성스럽게 만들어진 그림 같은 산길
4. 토끼봉능선 중허리길의 정체
붉은색; 또끼봉능선 중허리길
녹색; 칠불사-연동골 연결길
합수부에서 잇지 못한 나머지 구간을 잇고 산길을 제정비(정확한 트랙 확보 및 표지기 부착) 하기 위하여 다시 찾았다.
지난번 중단한 지점에서 이어가기 위하여 칠불사에서 목통골로 가로질러 가는 길을 따라 가는데 계곡에 접근했을 무렵 은백의 멋진 신사 한 분이 인사를 하면서 건너 온다.
반갑게 인사를 하고 습관처럼 인물 사진을 찍었는데 [가족게시판]에 시진이 올려진 <백산>님이시다.
이날 <백산>님은 목통골로 화개재에 올라 토끼봉능선으로 하산하실 계획이었는데 산길탐구 계획을 듣고서는 따라오시겠다 하신 덕분에 탐구산행팀이 보강되어 하산길에서 산길탐구에 큰 도움이 되었다.
지난번 탐구에서 중단하고 내려온 지점에서 다시 올라가 산길을 이어가는데 악전고투를 겪으며 올라왔던 길은 싱겁게 끝났다.
얼마 가지 않아 고도 970에 나타나는 계곡의 큰 집수조가 그 끝이었다.
결국 이 길은 칠불사 용수용 배수관을 따라 올라갈 수 있도록 만든 산길이었다.
연동골 계곡 물이 어디든 깨끗할 것인데 무엇한다고 이 높은 곳까지 거대한 산길을 내면서까지 올라왔을까.
단순히 용수 확보만 생각한다면 칠불사에서 연동골로 가로질러 가는 길을 따라 배관을 설치해도 충분할 것이라 생각할 수 있는데 문제는 칠불사에서 다용도로 사용하는 용수의 수압을 확보하기 위하여 고도 970까지 올라가서 끌고 왔을 것이라 이해가 될 수 있을 것이다.
신기한 것은 두차례나 내려오면서 그 좋던 길이 칠불사 주변 산길과 만나는 들머리를 코 앞에서 놓쳤다는 것이다.
모를 일이다. 길의 출입을 막기 위하여 길의 입구를 알라바바의 소굴처럼 마술같이 막아 놓았는지.
5. 당부의 말씀
이 길은 산꾼이 산행을 위하여 갈 필요는 없을 것이다.
다만, 토끼봉능선 산행 중 길을 벗어나 치고 내려오다가 이 길을 만났을 경우 어디에서 와서 어디로 가는지 제대로 알아야 안전한 산행을 마무리 할 수 있을 것이라 알고는 있어야 할 것 같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산중 감추어진 문명처럼 정성스럽게 놓여있는 길이 구간에 따라 호젓하기도 하고 때로는 위험하여 스릴을 느끼기도 하면서 깊은 산중에서 묘한 매력을 발산하는 길이기도 하다.
칠불사 용수용 배관이 깔려있는 길이지만 산꾼이 용수 배수관을 파손하는 우려는 전혀 없기에 산길과 배관에 손상을 입히지 마라는 당부는 아마도 산꾼들에게 모독이 될 것이다.
한가지 당부를 드린다면, 산길의 곳곳에 나무 사다리가 놓여있는데 설치한지가 제법 오래되어 썩어 있다.
절대 나무 다리를 믿지 말고 안전하게 우회를 해야 할 것이며, 특히 몸무게 80kg 이상 나가는 산꾼들은 절대 조심해야 할 사항이다.
주변 지형이 무수한 암벽으로 지리산중에 이렇게 험난한 구간에 놓인 산길도 없을 것 같다.
그러나 산길은 명확하다. 디딤돌을 비롯하여 인공의 흔적을 찾아가면 쉽게 찾을 수 있으며, 배관과 일정한 거리 이내에 산길이 있기 때문에 길을 잃었다면 우선 배관부터 찾아보고 주변에 인공으로 길을 만든 흔적이 없는지 확인하면 쉽게 산길을 이어 갈 수 있다.
*중허리 길 보다 아래 칠불사에서 연동골을 가로질러 가는 길을 포함하여 칠불사 주변의 거미줄 같은 산길은 별도로 발표하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