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리산사람

<부산일보> 남부군의 '지리산 곡(哭)' 부른 최순희씨 인터뷰

조박사 | 5900
'핏빛 얼룩진 능선, 철쭉처럼 붉었다'
한국전쟁 때 남부군 문화지도원, 지리산 영령 위한 '진혼곡' 작사·작곡
'지리산 비가'로 인터넷에 최근 퍼져...
매년 천왕봉 위령제, 산꾼에겐 '전설'



사진 설명:한국전 당시 지리산 일대에 뿌려진 삐라 속의 한 장면.
남부군 제81사단 문화지도원이었던 최순희가 피아노를 치고 있는 모습이다. 이 삐라는 국사편찬위원회 사료 중 하나로
지리99(www.jiri99.com) 운영자인 류정자(58. 산악인)씨가
발견해 본보에 제공했다.

'지리산 곡(哭)'이라고 했다. 곡은 서럽고 처연했다.
2절을 차마 듣지 못하고 껐다. 하지만 곧 다시 틀었다.
듣다가 끄고 껐다가 다시 들었다.
코끝이 찡했고 시나브로 눈물이 났다.
'지리산 곡'이 최근 인터넷을 통해 조심스럽게 구전되고 있다.
곡은 최순희(82) 작곡,작사,노래다. 그녀는 한국전쟁 당시 남부군 제81사단의 문화지도원으로 지리산에 웅거했다.
이태의 소설 '남부군'의 '최문희'가 바로 그녀다.
곡은 한동안 '구전'으로 알려졌다.
'작자 미상'으로 다른 음반에 수록된 경우도 있었다.

그녀와 함께 활동했던 이태는 소설에서 이렇게 묘사했다.
'동작이 활달하고 격정적인 인상의 20대 여인이었다.
평양에서는 오페라 카르멘의 카르멘 역을 맡았던 오페라 가수였고
공훈배우였다."

서울에서 살고 있다는 소식을 듣고 수소문한 끝에 접촉했다.
하지만 그녀는 집 앞에서 '직접 대면'을 완강히 거부했다.
사진도 끔찍이 싫어했다. 대신 질문을 하면 답하겠다고 했다.
결국 한참 동안의 실랑이(?) 끝에 인터뷰는 전화로 이뤄졌다.
'서먹한' 공간 속에서 그녀는 약속대로 성실히 답했다.

최씨는 제목부터 수정했다. 원제가 '지리산 곡'이라고 했다.
한국전쟁 때 죽은 영령들을 위로하기 위한 진혼곡(哭)이라고 말했다.
인터넷에서는 '지리산 비가'로 떠돌고 있다.
제작 연대에 대해서는 정확히 기억하지 못했다.
"아마 13년 전이었을 거예요.
집에서 피아노를 치면서 테이프에 담았죠."
녹음한 이유는 세월과 함께 목소리가 '가는(거칠어 지는)' 것이 아쉬웠다고 했다.

하지만 더 큰 이유도 있었다.
"아들이 하나 있습니다. 한국전쟁 당시 북한에 두고 왔죠.
그 아들에게 혹시 소식을 전할 수 있을까 해서….
" 녹음을 했던 1990년대 중반께 남북왕래가 잦아지기 시작했다.
그때 남쪽 스님들이 간혹 방북하기도 했다.
이들 스님을 통해 혹시 소식이 전달될까 기대했다고 했다.
스스로 가수였으니 노래만큼 좋은 편지가 없었던 셈이었다.

녹음된 테이프는 이런 이유로 주로 스님들에게 전달됐다.
제작된 수량은 기억하지 못했다. 당시 전남 순천의 송광사 말사인
불일암 스님들에게 전했는데,어쩌다보니 일부가 유통된 모양이라고
그녀는 추측했다.

불일암은 30여년 전부터 인연을 맺었다.
당시 '무소유'를 주창했던 법정 스님이 이곳에서 기거할 때였다.
"살아가는 것이 너무 힘들 때였답니다.
다행히 그곳에서 평온을 얻었죠.
" 지금도 친정을 가듯 매달 1차례씩 암자를 찾고 있다'고 말했다.



"철쭉이 피고 지던 반야봉 기슭엔/…
/피아골 바람 속에 연하천 가슴 속에/…
/아 아 그 옛날 꿈을 안고/…
/오늘도 반야봉엔 궂은 비만 내린다"
그녀는 통화 도중 뜬금없이 노래를 불렀다.
작곡한 지 꽤 오래 됐고 80세를 넘긴 나이인데도 그녀는 가사와 음정을 정확히 기억했다. 목소리도 창창했다.
그녀는 한 소절을 다 부른 뒤 대뜸 '노랫말의 의미'를 물었다.

"철쭉은 꽃이 아닙니다." 철쭉이 꽃이 아니라니?
토벌대와 남부군의 전투가 가장 치열했던 당시의 계절은
함박눈이 내린 한겨울이었다고 했다. 밤낮으로 전투가 이어졌고
곳곳에 시체가 나뒹굴었다. 그러다 반야봉에서 새벽을 맞았는데
핏빛에 얼룩진 능선이 마치 철쭉처럼 붉었다고 했다.

가사는 총 3절로 이뤄졌다.
1절의 반야봉에 이어 써래봉,추성동이 다음 소절을 이었다.
가사는 온통 한(恨)을 담았다.
'눈을 뜬 채 묻혀져간/…/잊었느냐 피의 노래,통곡하던 물소리를/…
/너는 알지 눈보라가 울부짖는/….'


"지금도 해마다 9월 9월이면 지리산을 찾습니다.
지난해에도 중산리와 법계사를 거쳐 천왕봉에 올랐죠.
가는 걸음마다 한 맺힌 영혼을 위로했습니다.
" 해마다 되풀이되는 그녀의 지리산 위령제는 벌써 40년을 넘겼다.
"딱 두 번 못갔죠."
지난 2003년과 2004년인데 관절염이 도졌기 때문이라고 했다.

최씨의 '지리산 위령제'는 산꾼들에게
지금까지도 전설처럼 자리잡고 있다.
이른 새벽에 잠깐 이뤄져 위령제를 본 사람도 많지 않았을뿐더러
이를 목격한 사람도 그녀의 깊은 통곡에 충격을 받았기 때문인 듯했다. 지리산 지기로 유명한 함태식 선생은
'그곳에 가면 따뜻한 사람이 있다'라는 저서에서
그녀의 위령제를 이렇게 그려냈다.

'최순희라는 여인이 찾아왔다./…
/새벽녘 섬진강이 보이기 시작하자/…
/노고단에 올라와서는 혼이 나간 사람처럼 온 산에 대고 절을 했다/…
/그녀는 노고단 정상에 뜨거운 커피를 뿌렸다.
인텔리 빨치산들이 커피를 즐겨 마셨는데,
죽어가면서도 커피 한 잔 마시면 소원이 없겠다고 했다는 것이었다.
정말 혼이라도 있는지 노고단의 붉은 땅에 뿌려진 커피가
금세 땅 밑으로 스며드는 듯했다.'

인터넷에는 그녀의 육성 노래와 함께 한 장의 삐라가 떠돌고 있다.
삐라는 그녀가 뒤로 돌아앉아 피아노를 치는 사진을 담고 있다.
사진은 '피아노를 치고 있는 전 남부군 81사단 문화부 지도원
(전 북조선 국립예술극장 오페라 가수 최순희양)'이라는
설명을 달았다.
당시 그녀는 문화대원 15명 중 11명을 잃고 생포된 뒤
지리산 빨치산의 자수를 권유하는 삐라에 활용됐다.
삐라는 그녀에게 영원한 멍에가 된 듯했다.

40여분의 시간이 지난 뒤 그녀는 통화 중단을 정중히 요청했다.
동네 아이들에게 피아노를 가르쳐 주고 있는데
강습시간이 됐다고 했다. 끝으로 건강을 물었다.
"늙는 것도 팔자가 좋아야 합니다. 시간이 멈춰버린 것 같은데….
한이 맺힌 사람은 늙고 싶어도 늙지 못해요."
그녀와의 통화는 그렇게 끝났다.


# '지리산 곡'은
인터넷에서 2종류로 유통되고 있다.
하나는 최씨가 직접 녹음한 것이고, 다른 하나는 한보리(본명 배경희)씨가 '지리산 비가'라는 제목으로 편곡했다.
편곡은 지난 2003년 전남 동부지역사회연구소가 여순사건 추모집으로 발매한 '봄이면 사과꽃이'라는 제하의 15곡 중 5번째 곡으로 실렸다.
이때만 해도 지리산 곡은 빨치산의 구전 노래로 알려져
'작자 미상'으로 기록됐다.

# `지리산 곡(哭)' 전문

1.철쭉이 피고 지던 반야봉 기슭엔/
오늘도 옛같이 안개만이 서렸구나/
피아골 바람 속에 연하천 가슴 속에/
아직도 맺힌 한을 풀 길 없어 헤맸나/
아 아 그 옛날 꿈을 안고 희망 안고/
한 마디 말도 없이 쓰러져간 푸른 님아/
오늘도 반야봉엔 궂은 비만 내린다.

Ⅱ.써래봉 달빛 속에 치밭목 산죽 속에/
눈을 뜬 채 묻혀져간 잊지 못할 동무들아/
시루봉 바라보며 누워있는 쑥밭재야/
잊었느냐 피의 노래,통곡하던 물소리를/
아 아 그 옛날 꿈을 안고 희망 안고/
한 마디 말도 없이 쓰러져간 푸른 님아/
오늘도 써래봉엔 단풍잎만 휘날린다.

Ⅲ.추성동 감도는 칠선의 여울속에/
굽이굽이 서린 한이 깊이도 잠겼구나/
거림아 대성골아 잔돌의 넓은 들아/
너는 알지 눈보라가 울부짖는 그 밤들을/
아 아 그 옛날 꿈을 안고 희망 안고/
한마디 말도 없이 쓰러져 간 푸른 님아/
오늘도 천왕봉엔 하염없이 눈이 내린다.


백현충기자 choong@busanilbo.com
4 Comments
김용규 2006.07.09 20:00  
지리산의 역사는 우리 역사와 함께 시련의 역사이기도 한것 같습니다. 멀리는 삼한시대, 임진왜란, 가깝게는 6.25 전쟁이 끝났어도 가장 처절하고 가장 긴 전쟁이 행해진 곳이 지리산입니다. 쓰라린 인간의 고통을 몸서리치게 겪은 증인이기에 지리산 역사의 한 단면을 엿볼수 있겠군요.
조박사 2006.07.09 19:20  
7월 7일 부신일보에 기재된 기사중 남부군 최순희씨의 인터뷰 내용입니다. 얼마 전에 이곳 지리 다방에도 간략하게 언급이 된었지요. 지금 태풍이 밀고 올라오는 후지근한 더움이 대기에 흐르고 있습니다. 휘몰아치는 오해와 반목, 이견과 동조도 격정의 시간이 지나면 잠잠해지듯 태풍이 모든 걸 휩쓸고 지나가 고요하게 잔잔함이 흘렀으면 하는 바램입니다...
비공 2008.01.16 04:45  
제가 감히 뭐라고.. 제까짓 게 감히 지리산의 치열했던 그 삶을 얼마나 느꼈다고.. 글을 읽고 노래를 듣고 눈에서 뭔가가 주욱 흘러 내립니다.. 전쟁이 뭔지,전쟁에 대해 구체적으로 들어 본적도 없이 태어나고 자란 세대인 제가... 왜 이렇게 목구멍까지 뭔가가 차오르고 가슴팍이 답답해지는 건지... 제 손톱밑의 가시 하나에 온갖 죽을것 같이 엄살을 피우고.. 제 자식, 제 가족, 제 부모, 제 형제들의 안위나, 제 편안함을 소원하고 사는 그런 지금의 제 삶의 모습을 다시금 생각해 봅니다.. 이제는 지리산에 갈때 꼭 커피를 가져가야겠습니다.. 그래서 한 그릇씩 잘 저어 흩뿌려야 겠습니다..
saiba 2015.01.21 07:58  
가사절마다 반복되는... 아래의 소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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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 아 그 옛날 꿈을 안고 희망 안고/
한 마디 말도 없이 쓰러져간 푸른 님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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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월이 흘러흘러... 그 <꿈> <희망>의 실체라는 것이
혹시나 현재 이북에서 구현된 세상이었을까요? 하는 생각을 해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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