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리산사람

마천의 소문난 짜장면집 <강상길>님

꼭대 | 7472
2003년 04월 05-06일


1. 마천의 [소문난 짜장면집]



백장암에다 영원사까지 구불구불한 비포장 산길을 달려놓으니
마천에 도착할 무렵 딸아이의 얼굴은 노랗게 질려있었다.


마눌과 딸아이가 고속버스를 타고 첫새벽에 서울을 출발하여
남원에 도착한 시간이 10시 가까이 되어 아침을 먹었으니
두어시쯤 마천의 [소문난 짜장면]집에서 점심을 먹일 요량으로
시간을 맞추기 위해 이리저리 끌고 다닌 것이
오히려 속을 울렁거리게 만들어 식욕을 버려놓았다.


밥 생각 없다는 마눌과 딸아이를 억지로 끌고
낡은 유리 여닫이 문을 열고 식당으로 들어섰다.



*마천의 [소문난짜장면집] 앞에 선 <강상길>님




지리산 자락에 삶의 터전을 이루고 살아온 다양한 사람들을 만나는 것도
나에겐 산행 못 지 않은 즐거움이었으므로
마눌과 딸아이에게 나의 즐거움을 보여주고 싶었다.


비록 시골 구석이지만 짜장면 맛이 기가 막힌다 꼬셔서 들어서긴 하였지만
사실 짜장면 맛이 좋다 한들 무슨 대단한 차이가 있겠는가.

지리산골의 작은 읍내 60년대식 지붕 낮은 허름한 식당 풍경이
우리 세대에겐 아련한 추억으로 떠오르긴 하였지만
지리산 자락에서 맛을 따진다면 굳이 임천강 건너 있는 이 집을 찾을 이유는 없었다.


솔직히 말한다면
외팔로 복잡한 중국 음식을 만들어 내시는 주인 아저씨가 이색적이기도 하였거니와

그보다는 60을 넘기신 아저씨의 파란만장한 삶이
지리산을 떠도는 산꾼들의 보헤미안적 취향과 쉽게 어울려
아름아름 지리산꾼들의 쉼터가 되면서 어느덧 지리자락의 일부로 편입된 듯 하다.



망설임 없이 짜장면 세 그릇을 주문하여 만만치 않은 양을 몇 번 젓가락질에 비워버리는데
마눌과 딸아이는 한참을 더 붙들고 있고서도 반을 비우지 못했다.

남원에서 맛있게 먹은 아침이 울렁거린 속에서 다 올라 올 참이었으니
그 정도 들어가 준 것만도 다행이다 싶어 그만 먹도록 하였다.



“요즘 경기가 나빠져 힘이 드시지요?”

다행히 손님이 뜸할 시간이어서 아저씨께 슬슬 수작을 부려보았다.

“고향이 어디십니까? 말씨를 보니 이곳이 고향은 아니신 것 같은데….”

“아, 대전이 고향인데 떠돌다가 함양에 10년 마천에 10년 그리 되었네요.”

이야기의 실마리가 쉽게 풀려가는 것이
오늘도 지리자락처럼 묵묵히 살아오신 어느 인생의 자취에 동화되어 떠돌아보리라
단단히 마음먹고 있었다.


쉽게 일어설 일이 아니다 싶어 허리띠를 느슨하게 한 후 다음 질문을 드리려 하는데

아니 웬 걸!

아저씨도 건너편 탁자의 의자에 앉으시며 묻지도 않은 인생역정을
오히려 선수 쳐서 풀어놓으시는 것이 아닌가!


‘아니! 나의 수사력이 어느새 무언의 눈빛으로도 상대의 마음을 끌어낼 수 있는 지경에 도달했단 말인가!’


중국음식점을 시작하게 된 동기를 비롯하여 이 시점을 기준으로
지난 일들과 그 뒤에 닥친 일들을 적당히 오가며 풀어놓으시는데

달변은 아니었으나 시공을 넘나들며 이야기가 전개되는데도
중복됨이 없이 흥미진진하게 들려주시는 것이

아무리 보아도 내가 그분을 상대로 수사하는 것이 아니라
그분이 오히려 나를 이야기 들어줄 상대로 포박해 둔 꼴이었다.



이때까지만 해도 애당초 목표대로 어디서 중국음식을 배워서 마천 골짝에 자리잡게 되었는지
현재의 모습을 기준으로 그리 복잡하지 않은 이야기를 들을 요량이었다.


그러나 이야기는 순시간에 목표를 돌파하여 격정에 찬 사연으로 옮아갔고
그분의 격정에 따라 내 마음도 출렁이며
그분의 소설 같은 인생역정은 끝간 데 없이 구름처럼 흘러가고 있었다.

소화가 되지 않는 듯 서성이던 딸아이도 어느 새 자리를 잡아 다시 앉았고
마눌도 그분을 향하여 몸을 돌려 고쳐 앉았다.


걱정되어 곁눈질로 훔쳐본 주방에선 무언가 불에 올려놓았는지 김이 모락모락 났건만
점심 시간을 비껴선 탓에 다행이 한동안 손님은 들어서지 않아
그분은 컵에 물을 부어두고 간간히 목을 축여 가면서까지
‘너 이 넘 잘 만났다’ 작심한 듯 이야기를 이어가고 계셨다.



어릴 때 우연히 팔이 빠져 유도원에서 끼워넣고서 고정시키느라 붕대를 감아놓은 것이
피가 통하지 못할 정도로 심하게 압박하여 한쪽 팔을 잃어버리게 된 안타까운 사연에 이어

프로복싱이 전성기를 구가할 무렵 프로모션 판에 뛰어들어
한 시절을 풍미한 선수들과 고락을 함께한 이야기를 지나

어쩌다 떠돌며 함양에 자리잡게 된 동기가 되어준
지금의 부인과의 애틋한 사랑 이야기에 이르러선 마눌의 두눈이 촉촉해져 갔다.


*애틋한 사랑 이야기가 숨어있는 부인과 함께





추성을 둘러본 후 용유담을 지나 구형왕릉을 둘러보고
개선마을로 잠입하리라 한 이날의 남은 일정도 내팽개치고

이야기에 빠져있는 도중 틈틈이 전체적인 이야기 구성에 부족한 점을 질문 드리며
서울로 돌아가 이곳 식구들에게
지리산 자락에 텁텁한 막걸리 맛처럼 살아가시는 이분의 파란만장한 삶을
생생히 전해드리리라 온 몸이 들떠 있었다.

혹시나 잊을까 하여 <강상길>님이라 일러주시는 함자는 마눌에게 적어둘 것을 부탁하며
영화 같은 이분의 인생역정을 우리 식구들에게 전해드리리라 가슴 벅차 있었던 것이었다.


두시간 가까이 시간이 흘렀을까.
이야기가 대충 마무리 될 무렵해서야 미리 짠 것처럼 손님이 나타나고
그분은 음식주문을 받아 놓고도 주방으로 향한 발걸음을 멈추고 서서
마지막 마무리를 하기 위하여 침을 튀기셨고

나는 이분의 전체적인 이야기를 기승전결에 맞추어 우리 식구들에게 들려드리리라
클라이맥스를 뽑아내려 머리를 긴박하게 굴리고 있었다.


방에서 손님들의 독촉소리가 들리고 나서야 간신히 이야기를 마무리한 그분은 안도하시며
마지막을 덧붙이셨다.

“짜장면이 중요한 것이 아니고,
내 살아온 인생을 전해주고 싶어 책이 될까 하여 원고를 어제 부산으로 보냈어요.
어찌 이야기가 될 것 같아요?”

그분은 자신의 이야기가 책이 될 듯 싶은지 나에게 확인해보고 싶었던 것이었다.


“ 아, 그럼요. 물론입니다. 제가 꼭 책을 사보도록 하겠습니다.”


주방으로 돌아가시는 그분의 뒷모습을 보면서
폭풍이 지나간 듯 아직도 식지않은 격정을 쓸어 내리며 나는 생각을 바꾸었다.

우리 식구들에게 그분의 파란만장한 삶을 전해드리리라 하였는데 그만 두기로.


나의 엉터리 같은 가슴을 통하여 전해드리는 오류를 피하고
그분의 책을 통하여 제대로 전달될 수 있을 때 까지 기다리기로 하였다.

맛보기 삼아 이렇게 전해드리는 것보다 훨씬 가슴 저려오는 그분의 삶을.





<후기>

이날 식당에서의 지체 때문에 결국 남은 일정 중 용유담까지만 갔다 돌아설 수 밖에 없어
그리운 구형왕릉은 포기할 수 밖에 없었다.
1 Comments
유님 2006.09.15 11:00  
2003년도의 기록 잘 읽었습니다. 책은 나왔는지 궁금하고요. 책이 나왔다면 책구경을 하고 싶은데 제목이 어찌되는지요? 꼭대님께서 직접 들은 것과 책으로 보았을 때 느낌이 어땠을지도 궁금합니다. 저 너무 뒷북 치지요? 그래도 나무라지 마시길 바라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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