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리산사람

<서산>대사의 지리산 자취 – 5. 석가모니가 성불한 설산에 있는 [중철굴암(中鐵窟菴)]

꼭대 | 6666

 

 

 

인도 북부 작은 부족국가의 왕자였던 싯달타가 아무 걱정 없이 왕궁의 화려하고 풍요로운 생활만 하다가 어느날 성문 밖으로 나가 중생의 숙명 같은 생로병사의 참혹한 실상을 보고 왜 중생들은 태어나서 늙고 병들어 죽어야 하는지 깊게 고민하다가 잠든 아내와 아들과 함께 태자 자리를 버리고 29세에 출가를 감행하게 된다.

 

그리고 중생들을 생로병사의 고통과 번뇌로 부터 벗어나게 할 길을 찾기 위하여 6년 동안 먹지도 앉고 잠자지도 않고 치열하게 고행에 들어간 곳이 바로 [설산]이다.

 

그런 과정을 거쳐 결국 보리수 아래에서 중생들은 윤회하고 있음을 또한 인과응보(因果應報; 전생과 현세와 내세에 선악에 따라 행과 불행이 있다는 업보)의 법칙을 받고 있음을 깨닫고

바로

무명(無明; 잘못된 의견이나 집착 때문에 진리를 깨닫지 못하는 마음으로서 모든 번뇌의 근원)

갈애(渴愛; 중생이 오욕(五慾)에 집착하는 것으로서 모든 욕망의 근저가 되는 욕망이며 채워지지 않는 욕망)

부수고 해탈 열반하여 부처가 되어 인류의 3대 종교인 불교가 탄생하게 된다.

 

 

 

[설산]이 지리산에도 있으니 바로 [중철굴암] 주변 지역이다.

 

[하동지명고]에 보면,

[설산(雪山) ; 덕평과 오리촌의 남쪽, 삼정의 동쪽에 있었다.

대성리가 예부터 지리산의 불교천국으로 수많은 사찰이 있었음인지, 부처님이 고행했다는 설산이 마을 이름이 되었다.

계류를 이용하여 사금을 채취하던 금방앗간이 있었다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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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신에서 삼정으로 올라가다 보면 용화정사(사진상 건물) 위 가장 뒷쪽에 있는 능선 상에 설산분지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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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능선 상의 봉우리에서 양쪽으로 뻗은 지능 가운데 분지를 형성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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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넓은 분지에 수량이 많다.

 

 

 

 

 

지금도 의신마을 주민들이 [설산분지] 혹은 [설산고원]이라고도 부르고 있는 설산 마을터는 지리산중 깊은 곳에 세석평전을 제외하고 이렇게 수량 많고 넓고 안온한 곳이 있을까 싶을 만큼 특이한 곳인데, 어떻게 마을 이름이 설산이 되었을까.

 

문헌으로 전하는 바가 없으니 다만 짐작만 할 뿐인데, 지리산중에 특이하게 석가의 수행처였던  [설산]의 지명을 사용하였다면 그곳에서 석가를 따라 돈오(頓悟)를 위하여 고행을 감내하며 치열하게 용맹정진하였던 선승들이 있었기에 붙여진 이름일 것이라 쉽게 추정하게 된다.

 

[설산]의 이름을 얻게 된 그 선승이 <서산>대사였는지 어느 무명 선사였는지는 혹은 수많은 선승들의 행렬이었는지 알 수는 없다.

 

다만, 그와 같은 전통과 선맥(禪脈)이 흐르는 곳에 [중철굴암]이 자리하고 있고, <서산>대사 또한 삼철굴암을 오가며 석가의 설산 수행과 같은 수행을 행하며 깊은 득도의 경지에 올랐을 것이다.

 

 

 

현재 [중철굴암터]에는 성격 좋은 <무천>선사가 공부하는 토굴이 있다.

 

지리산꾼의 본질은 지리산중의 이상향을 찾아 헤매고 있는 중생들이니 깊은 산중 득도를 위하여 공부하는 토굴을 만나는 일은 경이로운 일이다.

 

다만, 현재 공부하는 분들이 거주하고 있는 곳일 경우에는 개인적인 영역을 존중하여 무례하지 않게 수양하는 마음으로 조용히 방문하여 깊은 지리산중에서 깨달음을 위하여 공부하는 분들의 마음을 공유하는 시간이 되어야 그 곳을 방문한 의미가 있을 것이다.

 

오후 3시부터 공부에 몰입한다고 하니 산중 토굴의 고즈넉한 맛을 조용히 맛보려면 공부시간 전에 소수의 인원으로 정중히 방문하여 반갑게 내어 주시는 산중 차 몇 잔 얻어 마시고, 석가가 무명과 갈애(五慾에 집착)를 깨부수고 성불한 설산에 서 있음을 느껴보는 것도 좋을 것이다.

 

그리하여 오욕(五慾 재욕, 색욕, 식욕, 명예욕, 수면욕의 인간의 동물적인 5가지 욕망)을 티끌만큼이라도 그 곳에 내려놓고 하산할 수 있다면 수 많은 선승들이 치열하게 정진하던 지리산의 의미를 조금이나마 깨달을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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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설산에서 중철굴암터로 넘어가는 안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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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향으로 조용하게 자리 잡은 중철굴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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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철굴암터 우측에 마치 석종형 부도같이 생긴 바위가 있다.

  좌측에도 토굴에 바짝 붙어 형상이 다른 바위가 있는데 양쪽에 바위가 자리를 잡아 토굴을 더이상 크게 짓지 말도록 되어 있다고 한다.

 

 

 

중철굴암터에서 하철굴암터로 내려오는 중간에 [연암]을 떠올릴 만한 아담한 토굴이 하나 있다.

그런데 지난 11 13일 방문했을 때 들은 바는 최근 산중 주거지 철거 정책을 펴고 있는 관리공단에서 수일 내에 철거한다는 소식

이다.

 

 

이곳도 의신 주변에 있었다는 31사찰 중에 하나 인지도 모를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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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철굴암터 아래 또 다른 토굴 입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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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암 보다 조금 작은 토굴 (지금쯤 철거되고 없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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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중철굴암 지형도

   지형도 상으로도 고도 700과 750 위치에 등고선 간격이 특이하게 넓은 지역이 설산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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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중철굴암 지형도

   붉은색선; 중철굴암이 있는 설산을 거쳐 벽소령 가는 지름길인 [곱배기새길]

   청색; 하철굴암에서 중철굴암가는 길  

 

 

 

 

 

*설산 주변의 상세한 산길탐구는 [산길탐구방][곱빼기 새길]의 제목으로 별도로 올립니다.

 

 

 

 

 

**참고문헌

1.     화개면지편찬위원회 - [화개면지]

2.     하동군 - [서산대사 유적지 정비사업 계획서]

3.     <서산대사> - [청허당집]

4.  하동문화원 - [하동군지명지]

5.  진주문화원 - [국역 진양지]

6. <최석기> - [선현들의 지리산 유람록]

-본문의 많은 내용을 참고문헌에서 발췌하여 인용하였습니다.

 

 

 

 

 

6 Comments
진주아재 2011.11.28 14:56  
저곳이  중철굴암터 입니까.....?
 
저곳은  지리비박 32차  07년 10월 27일
선비샘아래 에서 진주팀과
비박약속이 있어  오후에  쎄빠지게  올라가던날
 
저곳으로 올라 넘어 선이후  수차례
 
오고갔었는데
 
그냥 무명 기도터인줄 알았습니다.
 
꼭대님  덕분에  또한가지 배우네요........^^
무착대 2011.11.28 20:07  
지리산행이란 이유때문에 이곳에 따라갔다 왔지만.
 
불교에 대해서 전혀 문외한인 제가 불교에 대해서 많이 배우고 있습니다.
설산.철굴암.무명. 갈애.오욕...
 
그리고 이곳에 다녀온 후 술도 많이 줄이고 많이 배우게 되었습니다.
두류산인 2011.11.29 10:06  
지리산과 서산대사의 흔적을 잘 읽고 있습니다.
내은적암에서 청허당을 열어 삼가귀감을 저술하고
3철굴에서  오욕과 칠정을 타파하며 득도의 길을 오르내리고
원통암, 칠불암, 신흥사늘파각기, 쌍계사, 불일암과 불일폭포, 각자바위, 황령정사기, 원적암, 은신암
그리고 지리산관련 화개동을 포함하는 9편의 시도 기대하겠습니다.
춘세 2011.11.29 13:47  
제가알고 있는 서울에 계신 나그네님 도 불교에 대단하신데,
꼭대 님도 대단하십니다,
두분이 앉아서 이야기 나누시면 :스님은 ;가만이 계셔야  할것같습니다,
같이 산행 하고 싶어도 토요산행을 하시니 맘 만 가고있습니다,
좋은 날 많이 되십시오.
김정주 2011.11.29 17:46  
지리산에서의 서산대사 역사와 공부 꼭대님의 연구에...
다시한번 감사드리며...열심히 읽고 다독 해 보겠습니다...^^*
청송녹죽 2011.11.29 22:08  
수고 많으셨습니다.
저도 감사드리며...
지리 99에서 이런 글을 만나리라곤 생각을 못하였는데
멋져부네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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