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리산사람

<서산>대사의 지리산 자취 - 9. 조선불교 대종장들의 열기를 느낄 수 있는 곳 [벽송사(碧松寺)]와 <벽송&…

꼭대 | 4973

함양 마천의 [벽송사]는 옛 절터 앞마당에 있는 삼층석탑의 양식을 보아 라말여초 창건된 것으로 보는데,

옛 절의 이름은 전해진 것이 없고1520년에 <벽송>대사가 초암(草庵) 수준으로 무너진 이곳에 자리를 잡고 중창을 하여 비로소 [벽송사]라 불리게 되었다.

 이후 벽송사는 [선종] [교종]에 두루 정통한 선교겸수(禪敎兼修)한 대 종장들을 108분이나 배출하여 일명 [백팔조사 행화도량]이라는 별명을 가지고 있다.

 그 명단을 보면, 벽송, 부용, 경성, 서산, 부휴, 사명, 청매, 환성, 경암, 서룡 등 기라성 같은 정통 조사들이 망라되어 조선 선불교의 최고의 종가라고 자부하는 곳이다.

 

조계종단에서 인정하는 우리나라 불교 [선종]의 법통을 이어온 선맥을 보면 다음과 같다.

 

1 <마하가섭> ; 인도의 <석가모니>의 제자로서 [염화시중의 미소]의 주인공

(중략)

28 <보리달마> ; 인도인으로서 동쪽으로 가서 중국에서 [선종]을 창시

(중략)

57 <태고보우> ; 조선 [선종]의 초조(初祖)

(중략)

제60조 <벽계정심>

61 <벽송지엄> (1464-1534)

62 <부용영관> (1485-1572)

63 <청허휴정(서산)> (1520-1604)

(중략)

 67 <환성지안>

 

 우리나라 불교의 법통을 이어온 분 중에서 벽송, 부용, 서산, 환성 대사 이 네 분이 [벽송사]에서 수행을 하였다니 [벽송사]를 조선불교 최고의 종가를 이룬 곳이라 할 만하다.

 

이것은 다른 말로 [벽송사]가 있는 지리산에서 한국 불교 법통을 네 분이나 배출하였으니 지리산이 품어내고 있는 인문적 힘이 얼마나 큰지 보여주는 척도이기도 하다.

 

이와 같은 지리산에 <벽송>대사가 자리를 잡은 이후 <벽송>대사 - <부용>대사 - <서산>대사로 이어지는 법통에서 배출한 기라성 같은 대 종장들이 지리산 일대에서 조선 중기 한 시대를 풍미하며 품어내었던 선풍의 열기를 떠올리면 그 기세가 무서울 정도이다.

 

 

<서산>대사가 <벽송>대사와 <부용>대사에 이어 [벽송사]의 제3대 조사로 전해지고 있으니 <서산>대사에게 있어 [벽송사]란 법통을 전해준 스승들의 선풍이 그윽한 곳이며 스스로도 선사상을 떨쳤던 의미 깊은 사찰이었다.

 

사실, 우리나라 사찰의 창건을 기록해 놓은 사찰기나 주석했던 조실들을 기록해 놓은 조사록은 대부분 과장이 심하여 믿을 바가 못 된다.

[벽송사]의 조사록에 기록된 제1 <벽송>대사야 당연하고, 2대로 기록되어 있는 <부용>대사가 [벽송사]에서 명성을 떨쳤다는 사실은 <서산>대사가 기록한 [부용당 행적]에 의해 확실하지만, <서산>대사가 실제 주석하였다는 명확한 기록은 아직 없다.

 <벽송>대사 사후에 출가한 <서산>대사로서는 직접 <벽송>대사를 대면하지는 못했지만 스승인 <부용>대사가 주석한 이래 지리산 일대에 선풍을 일으키던 [벽송사]<서산>대사도 머물러 흔적을 남겼을 것이며 선사상을 고취하는데 일조를 하였을 것이다.

  

 

지리산에서 불교의 법통을 잇도록 시초가 되었던  <벽송>대사는 1534년 수국암(壽國菴)에서 여러 제자들을 모아놓고 설법 후 차 한잔 다려 마시고 그대로 입적하여, 그 후 제자들이 의신동 남쪽 기슭에 석종(부도)를 만들어 봉안했다 한다.

 

<벽송>대사의 부도는 조선말 쌍계사로 옮겨져 현재 쌍계사 부도전에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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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쌍계사 승탑밭에 있는 <벽송>대사 부도 (맨 오른쪽)

 

CIMG3531.JPG*[碧松堂]이라 세겨놓은 <벽송>대사 부도

 

 

 <벽송>대사는 슬하에 <부용영관(芙蓉靈觀)>, <경성일선(慶聖一禪)>, <숭인설은(崇仁雪)>, <원오일진(圓悟一眞)>, <추월조능(秋月祖能)>, <신명(信明)> 등의 일기당천(一騎當千)의 제자들을 두었다.

 

 

 

[벽송사]는 한국전쟁 때 소실된 후 제대로 중창을 하지 못하고 몇 년 전까지만 해도 정체 불명 형태의  당우 몇채가 있을 뿐이어서

한국 선불교의 종가로서의 품격은 전혀 찾아 볼 수 없이 초라하기 이를때 없었는데 근래 중창을 통하여 간신히 전통적인 사찰의 모양을 되찾아 놓았다.

 

 그런데, 중창된 [벽송사] 주변을 돌아보면 <벽송>대사의 법맥을 이어받아 조선 선불교의 선풍을 일으킨 <부용>대사와 <서산>대사의 열기느낄 수 있는 곳이 있으니

바로<서산>대사의 [청허당] <부용>대사의 [부용암]이다.

 

지리산꾼들에게 [벽송사]는 상내봉 능선의 산행 출발지로서 멀 발치로 한번 바라보고 산길이 있는 숲속으로 들어가버리는 곳이었는데,

이제 잠시 짬을 내어 지리산이 배출한 한국 불교의 대들보들인 <벽송>대사, <부휴>대사와 <청허서산대사>를 상징하는 당우를 둘러보며

500여년전 이곳에서 깨달음을 위하여 생사를 초월하여 용맹정진하던 선승들의 열기를 느껴볼 수 있다면 지리산 그 자리에 서 있는 자신이 후답자로서 뿌듯해질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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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류능선 끝자락 점태양지에서 광점동으로 내려가는 도로에서 바라본 벽송사의 [부용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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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벽송사에서 우측으로 능선을 넘어가면 암자가 두채 보이는데 아래가 [부용암]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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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용암 현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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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벽송사에 들어서면 담 안쪽 우측에 있는 [청허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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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산>대사를 기리며 세운 [청허당]

운이 좋으면, 선승들이 들어찬 청허당에 고승이 찌렁찌렁하는 목소리로 설법을 펼치는 소리를 들을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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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벽송사 뒤에 있는 옛 절터 앞마당의 승탑과 삼층석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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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층석탑 형식을 통하여 <벽송>대사가 [벽송사]를 중창하기 전 절터의 창건이 라말려초임을 짐작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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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석탑 옆에 있는 도인송과 미인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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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층석탑이 있는 옛 절터의 앞마당에서 바라본 벽송사 전경과 조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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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벽송사 주변 지형도

 

 

 

**참고문헌

1.     화개면지편찬위원회 - [화개면지]

2.     하동군 - [서산대사 유적지 정비사업 계획서]

3.     <서산대사> - [청허당집]

4.  하동문화원 - [하동군지명지]

5.  진주문화원 - [국역 진양지]

6. 동국대역경원 - [서산대사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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