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억의지리산

향로봉 22시

비타별명1 | 299

향로봉은 어디일까?

    

1

 

점필재 김종직은 유두류록(1472)에 이렇게 기록하였다. “의론대가 그 서쪽 등성이에 있었다. 나 혼자 삼반석에 올라 지팡이에 기대 섰노라니, 향로봉미타봉모두 다리 밑에 있었다.(議論臺 在其西岡 余獨倚杖于三盤石 香爐峯彌陁峯 在脚底)”

김종직은 분명 향로봉과 미타봉, 두 봉우리를 따로 언급하였지만, 지금 미타봉이란 명칭은 사라지고 향로봉만 남았다. 주민들은 와불(臥佛 부처바위) 전체를 상내봉이라 부르는데, 향로봉이 음운변천을 거쳐 상내봉이 된 것으로 보인다. 향로봉>상로봉>상노봉>상내봉. 일종의 구개음화 및 언어경제의 원칙에 따라 민간에서는 발음하기 쉬운 소리로 바뀌는 경향이 있다. 사투리에서 힘들다>심들다, 형님>성님, 흉하다>숭하다으로, 복모음은 단모음으로 바뀌는(>, >) 사례는 많다. 지금도 일부지역에서는 자기 고장의 향로봉을 상로봉이라 일컫기도 한다. 또 이곳 주민들 또한 향로봉으로 부르기도 한다.

미타(彌陀)는 아미타불(阿彌陀佛)이므로 미타봉이 부처바위를 가리키는 것임은 더 말할 필요가 없을 것이다. 그런데 그 미타봉이 지금의 상내봉(향로봉)이 되려면, 부처바위(臥佛)가 곧 점필재가 말한 미타봉이기도 하면서 동시에 향로봉이기도 해야 된다는 얘기다. 그렇다면 점필재가 굳이 향로봉과 미타봉, 2개의 봉우리를 언급하지는 않았을 것이다. 둘 이상을 전제로 해야 그 다음 구절의 모두[]’라는 말이 성립되며, 선생이 같은 유산기에서 사용한 ()의 용법 또한 다 그러하다.

 

이런 의문에서 출발하여 향로봉의 위치 추정과 관련하여 다른 방향에서도 한번 생각해보고자 여러 가설을 제시한 것이 2018.12.18.향로봉산행기였다. 물론 결론은 없었다. 옛날과 근대의 기록 및 주민들의 구전이 일치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제는 나름의 결론 내지 마무리를 지어야 할 것 같아 과거의 글과 중복되는 내용이 있음에도 이 글을 쓰게 되었다. 우연히 2년만에 상내봉을 산행하고 얻은 결과이다.

송대마을에서 바라본 솔봉(왼쪽)과 건너편 상내봉

 

2

 

그전부터 다음과 같은 의견이 있었고 나도 언급한 바 있다. 말하자면 지금의 상내봉은 여러 개의 바위로 이루어져 있고 그중 선명한 2개의 바위봉을 김종직은 향로봉·미타봉이라 했을 가능성이다. 만약에 그렇다면, 미타봉은 아미타불을 뜻하므로 당연히 부처바위의 주봉을 가리킬 것이고, 향로봉은 그 부처에게 향을 공양하는 형상일 것이므로 그 앞의 오똑한 바위봉이 거기에 해당되지 않을까 하는 얘기다.

의론대에서 보면 명확하게 드러나지 않지만 멀리 송대마을 쯤에서 보면 향로봉은 와불의 목젖, 미타봉은 와불의 코에 해당되는 것이 선명하게 보인다. 하지만 그러면서도 전체로서 하나의 와불 형상을 갖춘 동일한 돌무더기 산을 부처의 이마·목젖 등 부위에 따라 봉우리 이름을 달리 한다는 것이 과연 납득할 만한 일일까 하고 결론을 유보한 바 있다.

송대에서 본 와불

그러나 다시 곰곰이 생각해보니, 당시 김종직은 2개의 바위봉을 각각 다른 이름으로 불렀지만 후대에 인근주민들에게 하나의 이름(상내봉=향로봉)으로만 남게 된 것은 산밑에서 볼 때는 하나로 보였기 때문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다. 즉 향로봉이든 미타봉이든 그 전체가 하나의 부처 형상을 이루는 바위산일 뿐, 콩알만한 목젖(점필재의 향로봉)은 바싹 붙어 있는 부속 바위에 불과하여 독립된 봉우리로 이름 붙이기엔 많이 부족했을 것이다. 만약 산밑에서도 두 봉우리가 확연히 구분되고 멀리 떨어져 있었다면 어떤 형태로든 따로 이름이 남아 있었을 수도 있지 않았을까? 거꾸로 말하면 점필재의 향로봉·미타봉은 그만큼 가까이 있었다는 얘기가 되겠다.

의론대에서 보는 상내봉의 모습과 산 아래서 보는 모습은 확연히 차이가 난다. 그것이 결과적으로 명칭의 차이로 이어지고 또 산봉우리 이름이 하나만 전해지게 된 이유가 아닐까 싶다. 향로·미타 둘 다 불교용어로 산 위의 고열암·신열암의 스님들이 처음 명명했을 것이다. 세월이 흘러 암자도 사라지고 산 위에서는 2개로 구분되어 부르던 봉우리 이름이, 하나의 부처 형상을 2개의 봉우리 이름으로 부를 필요가 없었던 산밑 주민들은 하나로 통합하여 상내봉으로 부르게 되었을 거라는 얘기다. 종합해 보면 김종직이 말한 향로봉·미타봉의 추정 위치는 아래와 같다.

의론대에서 바라본 상내봉(향로봉, 미타봉) 및 지형도

어쩌면 뻔한 결론을 먼 길을 돌아서 왔는지도 모르겠다. 내가 처음도 아니며 나만 이런 고민을 가졌던 것도 아니다. 나는 단지 정리하는 역할을 맡았을 뿐이며, 내 자신부터 혼란스런 생각을 정리하고 싶었다.

그럼 2개의 명칭 중 왜 하필 미타봉이 없어지고 향로봉이 살아남았을까? 알 수 없다. 다만 순서상 먼저 언급된 이름이 향로봉이고 일반백성들에게 더 친숙한 이름이 향로봉이기 때문이 아니었을까 하고 추측해볼 수는 있겠다.

송대 및 용유담에서 바라본 상내봉

 

3

 

그럼에도 문제는 남는다. 향로봉은 점필재의 기록 이후 사라졌다가 450여년 후 함양군수 민인호의 지리산탐승안내(1922)와 강계형의 양화대산수록(1920년대)에 비로소 다시 등장한다. 내가 알기엔 그렇다.

벽송사 건너편 언덕의 금강봉 향로봉 문수봉과 발 아래에 있는 마적대 송대 금대 등과 같은 명소운운한 민인호의 글은 본인의 유산기는 아니고 지역 유지들의 얘기를 듣고 기록한 것이라 구체적인 내용이 없어 향로봉의 위치추정에 도움이 되지는 않는다. 다만 향로봉이란 명칭이 당시까지 남아 있었다는 것은 알 수 있다. 미타봉은 역시 없다.

그런데 강계형의 향로봉은 김종직의 향로봉이 아니다. 왜냐하면 강계형이 묘사한 향로봉은 산등성이에 막혀 의론대에서는 제대로 보이지 않기 때문이다.

~(前略) 산의 여세는 사립재에 이르렀다가 향로봉이 되었고 정수를 뽑아 우뚝 솟았으니, 이는 군 남쪽 엄천 남녘의 조산(祖山)이 된다. 봉우리의 오른편 어깨에서 동북으로 뻗은 한 가닥은 구불구불 돌며 꺾이고 깎여 평평한 산등성이와 부드러운 산기슭으로 변하였고, 아래로 수 를 달려 빙 돌아 서쪽으로 물을 경계로 하여 몇 길의 석벽을 이루었으니 곧 세상에서 일컫는 양화대이다. 봉우리에서 곧장 뻗어내린 것은 노장대가 되었고, 노장대의 왼편 어깨에서 한 줄기가 서쪽으로 거슬러 나아가 문필봉이 되었으며, 그것은 문수사의 주봉을 이루고 문헌동의 바깥 안산(案山)이 되었다. 노장대의 가운데 줄기는 비스듬히 쯤을 나아가서는 굽이돌아 북쪽으로 나아가 문헌동의 안산인 채봉(釵峯 *비녀봉)이 되었고 노장대의 오른편 옆구리에서 흩어져 내린 여러 줄기는 봉우리와 봉우리가 중첩되고 지맥이 널리 퍼져 … 」

그가 말하는 향로봉은 정황상 상내봉3거리 인근(1213.9m) 봉우리를 말하는 것 같다. 사립재 이후에 솟아 엄천 남녘의 조산이 되었다 하였으니 주변에서 가장 높은 봉우리일 테고, 오른편 어깨에서 양화대로 이어진 능선은 지금의 군계능선일 것이다. 또 향로봉에서 뻗어내린 또 다른 봉우리(1193.3m)에서 세 갈래의 능선으로 나누어진다 하였다. 이런 사실을 종합해보면 향로봉은 지형도상 1213.9m봉으로 추정된다.

강계형의 향로봉 추정 위치

알다시피 강계형은 이 지역의 향족(鄕族)으로서 그가 남긴 여러 기록을 살펴보면 지리산 동북부 산세와 물길을 손금 보듯 위성사진을 보듯 훤하게 꿰뚫고 있었다. 그래서 절대로 무시할 수 없는 것이 그의 기록인데 점필재의 향로봉과 다르다는 것은 풀리지 않는 수수께끼처럼 상당히 곤혹스러웠다.

또 향로처럼 생겼다고 향로봉이라 불렀을 거라는 가설도 버리기 아까운 카드이긴 하다.

백련동에서 바라본 향로 모양(원 안)의 산. 가운데 바위 부분이 독바위

따라서 나는 이렇게 생각하기로 했다. 내가 찾는 것은 지리산 동북부 능선의, 모두를 만족시키는 향로봉이 아니라 김종직이 말한 향로봉이 어디냐로 한정하는 것이다. 옛 유산기에서 지명이나 경로가 서로 모순되는 것은 수두룩하다. 그건 그것대로 두고 김종직의 향로봉만 말한다면 위(2)와 같다고 해도 될 것 같다. 그렇다고 해서 지역민들이 부르는 상내봉은 잘못되었고 향로봉·미타봉이 정확한 명칭이니 이제부터 올바르게 부르자고 할 사람은 설마 없겠지. 지명 하나도 거기에 더불어 살아온 사람들의 삶이 녹아 있는 소중한 문화유산이니까. 우리는 호기심만 충족시키면 될 것이고, 그 문화유산은 존중하여 계속 상내봉으로 부르면 될 것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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